[력셔리 2009년 11월호]락의 신화 비틀즈와, 임플란트의 아버지 브레네막 미국을 점령하다!



락의 신화 비틀즈와,
임플란트의 아버지 브레네막. 미국을 점령하다!
영국인으로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던 비틀즈. 스웨덴인으로 미국 치의학계에 커다란 파장 을 안겨 주었던 브레네막 박사. 그들은 서로 다른 분야였지만 자국의 문화와 과학기술에 자부심이 대단했던 미국사람들에게 핵폭탄과도 같은 충격으로 등장하여 전세계에 파장을 불러 일으킨 인물들이다.
컬러 TV가 보급 되면서 대중문화에 관심이 쏟아지던 시대에 영국에서 활동하던 비틀즈는 강한 비트를 강조한 리듬과 일렉트릭 기타 등의 새로운 음악형식과 더불어 슬림한 양복과 장발 등의 독특한 연출로 1964년에 미국에 진출하여 예스터데이 ( Yesterday )나 렛잇비 ( Let it be )등의 명곡을 발표하며 짧은 시간에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다.
미국 사람들은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영국 문화가 미국을 침공했다고 말했을 정도 였으니 과히 그들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치 의학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획기적이며 신화에 가까운 치료인 임플란트를 개발한 브레네막(Branemark)교수도 비틀즈 못지않게 전설적인 인물 로 불리운다. 그는 스웨덴의 한 대학 정형외과 의사로 1952년 뼈와 혈관에 관한 연구를 하다가 토끼의 다리뼈에 티타늄이라는 금속으로 만든 원통을 넣었는데 이 원통이 뼈와 뒤엉켜 분리가 되지 않는 현상을 발견하면서 인공치아 이식술을 개발 하게 되었고 이를 활용하여 대안치아를 연구하였다.
1960년대 이후 대안 치아를 개발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된 실패로 이어지며 성공률이 50%에도 미치지 못하던 미국 치 의학계가 개최한 1978년 세계최초의 임플란트 학회에서 10년 이상의 연구 결과를 최초로 공개한 브레네막 박사는 실로 혜성 같은 등장이었다. 현재도 수많은 변형 제품의 근간이 된 나사 형태의 티타늄 임플란트를 소개한 브레네막 교수는 이미 임상실험 단계에서 10년 성공률 90%에 달하는 결과를 보여주며, 미국 치과계를 넘어서 전세계의 치 의학계에 비틀즈의 브리티시 인베이전 이상의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후 1980년대에는 브레네막 박사가 개발한 치과용 나사형태의 임플란트가 유럽 국가들과 미국에서 점차 보편적인 치료로 자리 잡기 시작했으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변형제품의 근간이 되도 있다. 또한 우리나라 에서도 1990년 초 외국산 임플란트가 수입되어 활발하게 시술 되었고 1997년 이후에는 국산 브랜드 임플란트가 처음으로 제조 판매 되기에 이른다. 이로인해 근래에 들어서는 치과용 임플란트에 대한 인식 높아져 임플란트 치료가 보편화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임플란트가 역사도 오래 되었고 임상의 결과도 충분히 보장된 시술이라 하더라도 완벽한 성공을 보장 할 수 없는 시술임에는 분명하다. 완벽한 임플란트 시술을 위해서는 임플란트 뿌리가 잘 심어질 수 있는 환경의 조성이 필요하다. 치주 상태가 어떠냐에 따라, 심는 부위가 상악인지 하악인지 아니면 앞니 쪽인지에 따라서 요구되는 시술의 고려사항이 달라지기 때문. 잇몸뼈에 임플란트 뿌리(티타늄)를 심는 각도와 깊이에 따라 임플란트의 수명이 좌우되기도 한다. 자연적으로도 잇몸이 1년에 0.2mm-0.3mm 퇴축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고려하여 10mm이상의 깊이로 심어야 하며 치주 속에 있는 잇몸뼈가 부족하거나 두께가 얇을 경우 이를 보충하여 티타늄 뿌리 부분이 안전하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는 전문 시술이 필요하다. 겉으로 봤을 때 잘 심어진 것 같아 보여도 몇 년이 지나면 흔들리다가 다시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